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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많은 엄마들이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게 된다. 옆의 친구가 내 아이보다 앞서가는 듯해 보이면 불안해진다. 혼자만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바짝 진도를 뽑아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가 지금 얼마나 빨리 진도를 나가고 있는가에만 관심이 많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아이가 현재 공부를 잘 해나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한 지표가 지금 어느 레벨을 공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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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아이의 실제 실력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만 기울이다 보면, “진도” 자체는 많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내 아이가 지금 몇 학년용 문제집을 푸는지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기본이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문제 풀이법만 배워서 (혹은 외워서) 한 학년 앞선 내용을 아무 고민도 없이 척척 풀어내는 ‘수재’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 깊숙히 걱정스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선행학습을 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그 학년에서 요구되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할 때가 아주 많다. 앞선 학년의 문제는 척척 풀어내면서 한 학년 낮은 수준의 기본적인 문제를 아주 원론적으로 질문하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이 아이러니함이란.

 

이해하기 쉽게 구구단을 예로 들어 보자. 초등학교 2학년 학생 두 명이 있다. 한 학생은 구구단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고, 다른 학생은 아직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지만 구구단이 뛰어세기, 혹은 반복덧셈이라는 개념은 이해하고 있다. 두 학생에게 문제가 주어진다. ‘한 달에 $5 씩 용돈을 받는다면, 열 네 달 뒤에는 용돈 얼마를 모을 수 있을까?’ 첫 번 째 학생은 문제를 듣자마자 대번에 “곱하기 14는 배우지 않았어요.”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구구단은 곱하기 9까지 밖에 배우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 두번 째 학생은, 구구단을 완벽하게 외우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문제에서는 5를 14번 더해야 하므로 천천히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답은 70이다.

 

구구단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학습수준이 높아져도 이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어떻게 푸는지 해법을 배워서 생각없이 풀 줄 아는 것 보다는, 원리에 충실하며 문제해결력을 스스로 키우는 훈련을 하는 것이 학년이 높아질 수록 저력을 나타낼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런 면에서 첫 번 째 학생 보다는 두 번 째 학생이 더 가능성 있는 학생이고, 당장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직은 너무 크게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물론 구구단을 능숙하게 외우는 것이 빠르고 정확한 연산에 많은 도움이 되기에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일 수 있겠지만, 너무 근시안적으로 당장 이것을 못한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를 들들 볶을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원리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풀이법이나 응용력까지 능숙하게 갖추고 있다면 그 학생은 모든 면에서 잘 하고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내로라 할 정도의 성적을 가진 우등생인데 원리에 대한 아무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수학을 기계적으로 풀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 풀고 있는지 자신 스스로도 전혀 알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문제가 조금만 다르게 나와도 출제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학생이나 학부모가 문제를 맞고 틀리고에만 신경을 쓴다. 따라서 원리 파악에 대한 노력보다는 “어떻게 빨리” 푸는지에만 초점을 두고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얼른 기계적인 해법을 선생님이 가르쳐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선생님이 풀이법을 가르쳐주자 마자 그 해법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모방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시험을 잘 보는 스킬을 갖추게 되기 때문에 시간이 갈 수록, 스스로 진정한 실력자라고 느끼게 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공부방법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어 점점 더 원리 파악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야트막한 이해력과 사고력으로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저학년까지만 통하는 방법이다. 똑똑하던 우리 아이가 갑자기 중고등학교에 가서 성적이 떨어진다? 기초가 부실했던 건축물이 허물어지 듯 예견된 결과다.  

 

이런 경우 일단 무분별한 선행학습을 중단할 것을 권한다. 아이가 기초가 부족한 것을 깨달았으면 이제 다시 원리부터 차근차근 배울 일이 남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여기서 또다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친다. 수박 겉핥기로 배운 내용을 다시 공부하려고 하면 많은 학생들이 집중력을 잃고 몰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한 번 “들어본” 내용을 “아는” 내용이라 쉽게 판단해 버리고 수업에 집중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 배울 때 “천천히,”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연산 속도보다는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며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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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학년에서 요구되는 커리큘럼은 사실 연속적인 스펙트럼처럼 지난 학년과 다음 학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해당 학년의 심화과정이 그 다음 학년에 배우는 내용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고,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그보다 높은 수준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내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교재의 레벨, 챕터, 페이지 등 피상적인 숫자에 연연하는 것 보다는, 내 아이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 그리고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깊이있게 파고들며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challenge를 주며 이끌어 주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기본 내용만 수박 겉핥기로 배우며 진도를 뽑는 것 보다는 깊이 들어가며 그 학년에서 요구되는 내용의 가장 심오한 수준의 이해와 문제해결력까지도 차근차근 밟으며 올라가는 것이, 장담하건데 나중에 흔들림 없는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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